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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26. 21:22

오순절의 두 가지 의미 기독교 일반2018. 5. 26. 21:22

(원문보기)


벌써 봄기운이 꽃망울을 서서히 부풀리고 있는 계절이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그리스도인에게도 봄은 다가오는 부활절과 오순절을 통해 생명의 기운이 더 힘차게 약동하는 계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말 불교의 승려 보다 못한 사회적 신뢰를 개신교회의 목회자가 받고 있다는 이 추운 계절이 속히 지나가길 기도해 본다.

얼마 전 3.1절이 있었다. 세상 사람에게 멸시받고 맛 잃은 소금처럼 짓밟히는 한국 교회에 영적 3.1절이 왔으면 하고 기도해 본다. 이 영적 겨울과 '포로 생활'은 뜨거운 말씀과 성령의 불로만 해결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절기와 뜨거운 기도와 말씀을 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구원의 확신에 대한 오해는 박 모 씨 같은 구원파 집회만 배불리고 있지 않은가?

예수는 구약에서 내려온 절기의 실체되셔

구약의 절기들은 당시 메시아를 믿는 백성에게 생명이었다. 율법을 불순종함은 저주와 사망을 자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약에서 그리스도는 이 모든 절기의 실체가 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도 절기의 실체가 또한 생명인 것이다. 유월절, 초실절, 오순절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길로 완성되어 놓여 있는 것이다.

(골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오늘은 그 절기들 중 오순절에 대해서만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 부활 승천 후 첫 성령강림은 오순절이다.

(행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그런데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오순절이 율법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고 믿고 있는데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성경을 살펴보면 근거가 확실한 말이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은 날

첫 유월절(1월 14일)에 출 애굽한 이스라엘이 시내산 앞에 도달한 것이 3월 첫날이다.

(출 19:1)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초하룻날, 바로 그 날 그들은 시내 광야에 이르렀다” (㉠ 시반월, 양력 오월 중순 이후)

그리고 온 이스라엘이 성결케 하고 준비한 가운데 제 3일에 하나님은 특별한 임재 가운데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말씀하셨다.

(출 19:9~1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너에게 나타날 것이니,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이 듣고서, 그들이 영원히 너를 믿게 하려는 것이다’ 모세가, 백성이 한 말을 주님께 다시 아뢰었을 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그들을 성결하게 하여라. 그들이 옷을 빨아 입고서, 셋째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여라. 바로 이 셋째 날에, 나 주가, 온 백성이 보는 가운데서 시내 산에 내려가겠다’"

(출 20: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십계명)"

49일째에 10계명을 받은 것이다. 유대력 1월이 30일까지니 17일간에다, 2월이 29일이니 더하고 3월 3일에 십계명을 들었으니 꼭 49일째인 것이다.

그러면 하루가 비지 않는가. 해답은 그날 계명과 법도를 말씀하다 중단된 것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공포 속에서 십계명을 듣고는 모세 즉,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전해 달라고 기도한 것을 주께서 들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날에야, 꼭 50일째 되는 날, 기본 율법을 모세가 기록하여 낭독하는 것을 전해 받고 피로써 언약한 것이다.

(출 20:17~22) "‘너희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할 것 없이, 너희 이웃의 소유는 어떤 것도 탐내지 못한다’ 온 백성이 천둥소리와 번개와 나팔 소리를 듣고 산의 연기를 보았다. 백성은 그것을 보고 두려워 떨며, 멀찍이 물러섰다. 그들은 모세에게 말하였다. ‘어른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듣겠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우리는 죽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당신들을 시험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이며, 당신들이 주님을 두려워하여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백성은 멀리 떨어져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시는 먹구름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갔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는 다 보았다’"

그래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대표로 듣고 와서 그 50일째 되는 날, 즉 오순절에 그 율법을 전한 것이다.

(출 24:4~8)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따라 기둥 열두 개를 세웠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서 젊은이들을 보내어, 수송아지들을 잡아 주님께 번제를 올리게 하고, 화목제물을 드리게 하였다.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은 그릇에 담아 놓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렸다. 그리고 그가 '언약의 책'을 들고 백성에게 낭독하니, 그들은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받들어 지키겠다’고 말하였다. 모세는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리며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것은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따라, 당신들에게 세우신 언약의 피입니다’"

이 사건은 신구약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오순절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그 자체로 생명

메시아, 즉 죄를 구속하시고 유월절 후 무교절 기간의 초실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과 화목할 자격을 거저 받은 신자는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오순절에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친히 생명의 양식이요 법이요 생명 자체가 된다는 것이다.

생명의 양식과 관련하여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오순절이 알다시피 유대인의 주된 양식인 보리와 밀 추수와 관련 된다는 것이다.

보리 추수 시작을 감사한 초실절은 유월절 및 무교절과 관련된다. 유월절 후 계속된 무교절 기간의 첫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에 첫 보리 추수를 기념한다. 이는 천국의 첫 열매처럼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이다. 신약에서 성령강림절인 오순절은 초실절에서 50일째인 날, 7주째 되는 주일날로 유대인의 주식인 밀 추수를 감사하는 날이기도 하다. 초실절에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다. 생명의 도인 율법(행 7:38)이 주어지고 주곡식을 거두어 먹기 시작하는 오순절에는 신자의 생명의 법이신 주님의 성령께서 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신자는 이제 새 생명의 양식인 말씀과 성령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생명이다. 유월절 양의 피를 믿어 구원 받은 이스라엘이라도 말씀에 불순종하면 멸망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주어진 초보적인 말씀도 생명의 도라 한 것이다(행 7:38, 신 30:20, 32:46,47). 신약 백성에게도 그 말씀이 생명이다. 말씀대로 믿는 믿음으로 순종치 않고 회개치 않는 신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것이다(고전 6:9,10, 갈 5:19~21).

(요 6:63)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이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요 12:47~50)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서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아니한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 나를 배척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내가 말한 바로 이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말한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하고, 또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친히 나에게 명령해 주셨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여 주신 대로 말할 뿐이다.""

(계 19:11~16) "나는 또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 흰 말이 있었는데, '신실하신 분', '참되신 분'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이 그 위에 타고 계셨습니다. 그는 의로 심판하시고 싸우시는 분입니다. 그의 눈은 불꽃과 같고, 머리에는 많은 관을 썼는데, 그분 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그의 몸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피로 물든 옷을 입으셨고,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군대가 희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날카로운 칼이 나오는데, 그는 그것으로 모든 민족을 치실 것입니다. 그는 친히 쇠 지팡이를 가지고 모든 민족을 다스리실 것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하신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령께서 생명이시다. 신자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산다.

(롬 8:13)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신자에게 중요한 명령은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 하라는 것

그러므로 신자에게 가장 중요한 명령은,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 하라는 것이요, 이를 위해 기도에 힘쓰고 말씀 순종에 힘쓰라는 것이다.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신자, 아니 목사라도 육신대로 본능대로 제 멋대로 산다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성경에 얼마나 많이 경고하는가? 오순절의 교훈만이라도 바로 이해한다면 한국의 개신교회 목회자부터 신뢰도 1위를 곧장 회복할 것이다. 뜨거운 기도로 제3의 오순절이 와야 한다.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는 참된 회개의 역사를 일으켜 한국 개신교인 한 영혼도 지옥에 보내서는 안 된다.

(갈 5:19~21)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 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 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오순절의 교훈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사형에서 사면 받은 신자는 말씀과 성령을 생명의 길이요,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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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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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교회 ‘원데이 다니엘기도회’서 간증

이정훈
▲오륜교회 ‘원데이 다니엘기도회’에서 강사로 나선 이정훈 교수 ⓒ김진영 기자

"스스로 의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어요. 예수님 앞에서, 입도 뻥긋하지 못할 만큼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었습니다. '아, 이제 죽었구나!' 그 순간, 이전의 저는 죽고 오직 예수만을 따르는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정훈 교수(울산대 법철학)가 떨리는 가슴으로 회심했던 그 때를 떠올렸다. 너무나 극적인 체험이어서, 듣는 이들도 모두 숨을 죽였다. 이 교수는 27일 밤 오륜교회(담임 김은호 목사)에서 진행된 '원데이 다니엘기도회' 강사로 나서 그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간증했다.

널리 알려져있듯이 이정훈 교수는 불자였다.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알고 싶었던 그는 20대의 이른 나이에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갔다. 그렇게 답을 얻어보려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 물음을 잠시 내려놓고, 사회로 눈을 돌린다.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 바꿔보고 싶었다.

문제는 기독교였다. 혁명을 하려면 예수 믿는 사람들부터 뿌리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 '왜 저들은 때마다 모여 누군가를 향해 노래를 부르고 아멘을 외치며,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는 걸까?' 이런 기독교인들이 그의 눈엔 매우 어리석어 보였다.

그래서 집요하게 기독교를 공부했다. 상대를 알아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성경부터 찾아 읽었다. 쉬는 시간엔 설교 방송을 들었다. 종교개혁사의 위인들, 위클리프와 칼빈, 아브라함 카이퍼 등을 연구했다. 한국교회사도 빠짐없이 읽었다. 신실한 기독교인도 잘 하지 못할 이런 것들을, 그는 교회를 공격하기 위해서 했다.

그날도 그는 설교 방송을 들으며 조소를 날렸다. 그런데 그날따라 목사의 입에서 나온 '죄인'이란 말이 뇌리에 박혔다. 법을 공부한 그에게 이 단어는 더 날카롭게 꽃혔다.

그 순간, 더는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무언가에 그는 압도당했다. 바닥에 엎드렸다. '아, 이제 죽는구나!' 머리가 아닌 온 몸의 세포가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이 교수의 고백이다.

사실 그가 읽었던 말씀, 파고 또 팠던 종교개혁과 한국교회의 역사가 그의 마음을 이미 흔든 뒤였다. 공격하려고 했던 것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영혼을 예수로 서서히 물들였던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고꾸라졌다. 주님 앞에서.

오륜교회 다니엘기도회
▲오륜교회 ‘원데이 다니엘기도회’에 참석한 성도가 두 손을 들고 찬양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지금은 기독교의 변증가가 되었다. 누구보다 뛰어난 혁명가가 되고 싶었던 이 교수. 이젠 그 이면에 있는 한계와 모순, 위선의 세계를 폭로한다. "남을 정죄하고 사회를 비판하면 할수록, 스스로 의롭다 여긴 이들. 그런 의인들이 만든 인류의 역사는, 역설적이게도 언제나 파멸의 그것이었다." 한때 어리석어 보였던 것들이 지금은 그의 삶에 전부가 되었다. "오직 예수" 그는 강연 내내 이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자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 앞에 무릎 꿇고, 우리의 모든 삶에서 예수님의 주권을 드러내야 합니다. 결코 삶과 신앙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나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드러낼 때, 결국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한편, 지난해 '1만 교회'라는 실로 엄청난 참여 속에 11월 1일부터 21일까지, 21일 동안 열렸던 '다니엘기도회'는 올해도 그 기적을 이어간다. 지난달 협력교회 목회자 약 340명이 모인 가운데 협약식을 개최한 오륜교회는, 이날 일종의 리허설 격인 '원데이 다니엘기도회' 이후, 앞으로 본격적으로 기도회를 준비해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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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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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송 칼럼] 불편한 예수 (11)

새언약초중고등학교 제이슨 송 교장
▲새언약초중고등학교 제이슨 송 교장

10.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한번 살다 가는 인생, 내 맘대로 살아 보자)

성경의 하나님,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을 거부하는 무신론자들의 철학은 바로 허무주의(nihilism)다. 그러니까, "인생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며, 영생이란 것은 망각에 불과하다면, 그냥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살다 죽자"란 주장이다.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의 "인빅터스"란 시를 들어 보았는가?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나는 그 어떤 신이든, 신께 감사하노라
내게 정복 당하지 않는 영혼을 주셨음을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서
난 움츠리거나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운명의 몽둥이에 두들겨 맞아
내 머리는 피 흘리지만 굴하지 않노라

분노의 눈물이 이 땅을 너머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비록 문이 좁을지라도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첫 부분은 마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견고한 의지를 갖고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는 듯 하다. 그러나, 끝 부분엔 헨리의 생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비록 문이 좁을지라도"란 예수님이 마태복음 7장 13절에 말씀한 "좁은 문" 그러니까 힘들고 어려운 천국길을 말하고, 또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는 그 좁은 길을 택하지 않았을 때 도착할 지옥을 말하는데, 헨리는 천국이든 지옥이든 상관없이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겠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자 내 영혼의 선장이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시나 노래가 얼마나 많은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 한국 70,80세대의 힛트곡 "내 인생은 나의 것" 다 그런 맥락의 노래다.

그러니 이런 사고를 갖고 있는 자가 못할 짓(?)이 있겠는가? 물론, 큰 범죄를 저지르는 자는 그리 많지 않겠지만, '욜로'의 사상 하에 삶을 살아간다면, 매사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될 수 있겠고, 특히 미성숙한 청소년은 이런 태도와 자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우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청소년은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나 듣고 싶은 음악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고, 절제와 정직을 요구하는 부모나 교사의 권위에 대들고 반항하며, 거침없이 남을 비하하고 비수같은 말로 상처를 주며, 공부나 책임완수보다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택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참 딱할 정도로 어리석으며, 미성숙함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며 어른이 되어, 또 부모가 되고, 조직의 리더나 중책을 맡은 사람이 되면서 깨닫는 것이 무엇인가? 말씀 묵상과 연단을 통해 신앙의 성숙함을 이뤄가며 배우고 느끼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인생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를 읽어보고 또 그 책의 내용대로 40일 새벽기도나 강해설교를 들어본 사람은 릭 워렌 목사가 한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목적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다"란 것이다. 이것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대로 표현한다면, Man's primary purpose is to glorify God and enjoy Him forever, 즉, 인생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기는 것이란 말이다.

잠언 3장 5-8절에서도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를 신뢰한다는 뜻은 인간이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범사에 그를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100% 받아들이는 것이다.

잠언 3장 5-8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지식을 의지하지 말아라. 너는 모든 일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그러면 그가 너에게 바른 길을 보이실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악을 피하라. 이것이 너에게 좋은 약이 되어 너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감으로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YOLO 철학과 정반대 되는 가르침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청소년의 중심에 YOLO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이들에겐 정도와 정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하나님이 불편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이런 하나님을 가르치는 교회가 불편한 곳일 수밖에 없다.

이런 청소년의 마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가짐이다. 이 세대 교회와 목회자, 주일학교 교사, 그리고 기독교 학교 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믿는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돌리게하라: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4, 5)

이것은 영적 전쟁이요 전신갑주를 필요로 함을 잊지 말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2)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롭고 깨끗한 마음을 청소년이 소유하도록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한 뜻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합당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장)

이런 거룩한 목적을 이루려는 좋은 교회학교 교사와 기독교 학교 교사, 그리고 청소년 사역자들이 많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익과 쾌락보다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위해 삶을 바치는 그런 차세대 리더를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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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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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 153 뜻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송삼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볼펜 시제품을 만들고는 직원들에게 이름을 공모했다. 직원들은 모나미물감이 인기가 좋으니 그대로 모나미로 쓰자고 했다. 프랑스어로 ‘나의 친구’인 모나미. 이름은 monami로 정했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monami 뒤에 뭔가를 붙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송삼석은 아이디어 회의를 소집했다. 직원들이 다양한 의견을 냈다. 

‘1963년에 태어났으니 모나미 1963으로 하자’ ‘5월 1일 태어났으니 모나미 501이 어떠냐’ ‘행운이 따르라는 의미에서 모나미 77로 하자’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속출했다. 그렇지만 송삼석의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었다. 그때 남자 직원이 “153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송삼석은 153을 반복해 보니 어딘가 익숙하고 발음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그 의미가 전혀 와닿지 않았다. 송삼석은 그 직원에게 도대체 153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 남자 직원은 화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화투에서는 갑오(9)가 최고인데 9를 만드는데는 225, 234, 135보다 발음하기에 153이 좋다는 얘기였다. 직원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남자 직원에게 ‘뭐 그런 아이디어를 내냐’는 식으로 눈총을 주었다. 그런데 송삼석은 153이라는 숫자가 너무나 낯익어 저 숫자를 어디서 보았지 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송삼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성경을 찾아 요한복음 21장 11절을 펴들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53은 기독교에서 예수의 말씀을 따르면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였다. 송삼석은 이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전율했다. 더이상 고민할 게 없었다. 송삼석은 최초의 볼펜 이름을 모나미153으로 정했다. 송삼석은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하나님은 내게 153이라는 숫자를 통해 기업인이 일생을 통해 반드시 지켜야 할 상도(商道)를 일깨워 주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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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joseph
가야가 기독교 국가였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도마가 한국에 왔었다.

좀 황당한 주장같지요?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이런 내용을 가르쳐 줄 리 만무하니 말입니다.
1세기에 예루살렘에서 인도를 거쳐 한국까지 사람이 다녀갔다고?

자, 이제부터 설명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도마박물관 조국현박사의 설명에 다른 전문가들의 자료를 보완한 것입니다.

김병모박사 *크리스챤 아님
http://i.imgur.com/zcN0Ynr.jpg
http://i.imgur.com/HlVjKre.jpg
조국현박사
1988년 가야국이 기독교국가임을 최초 발표. 삼국유사중 가락국기 해설, 가락국 20년 연구, 도마박물관 관장, 목회자

정학봉박사
한국역사철학자, 대신대 대학원원장, 인도 18회 방문하며 조국현 박사의 이론 입증.

이장식박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종교학과(B.A), 장신대 신대원(Th.B), (Th.M), 서독 뮌스터대학 신학부
미국 하버드대학 신학부(Th.M), 미국 드류대학 대학원(Ph.D)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도마가 해양 실크로드의 마지막 항구인 땅끝 나라 한국 김해에 도착하여 활동하였습니다.

1. 도마의 행적
1) 도마는 40년간 선교사역을 감당하다 순교했습니다.
도마의 사역은 전반기 20년은 에데사 탁실라, 한국의 가야에
후반기 20년은 인도의 호칭, 챙나이에서 활동했습니다.(도마의 인도 선교는 수리아의 교부 에브라임과 다른 전승들에, 그리고 바돌로매가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히브리 마태복음을 남겼다고 유세비우스 교회사 5권 10장에 나와있습니다.)

도마는 땅 끝이 인도인 줄 알고 왔었습니다
이 당시 인도 역시 로마의 동쪽 끝 속국이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인도까지 왔었는데 
막상 인도에 와서 보니 인도와 교역하는 더 땅 끝인 한국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가야와 인도는 많은 교역을 했답니다. 그 역사적 정황은 차차 설명)

2) AD 42~47년까지 한국에 6년간 머무르며 김수로왕에게 세례를 주고 인도로 돌아갔습니다.(삼국유사 기록된 연대)
http://i.imgur.com/Ritj5OZ.jpg
3) AD 48년에 허황옥을 김수로왕에게 중매했습니다.
도마는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 총회에 선교보고를 하러 가던 길에 
인도에 들러 허황옥을 김수로왕에게 중매시켜주고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4) AD 50년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참석했습니다.(서양의 역사에 기록된 연대)
5) AD 52년 인도 서남부 케랄라주에서 선교하였습니다.(인도의 역사에 기록된 연대)
6) AD 72년 인도의 첸나이에서 창에 찔려 순교하였습니다.

2.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은 인도사람.
1) 허황옥은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왔습니다.
아유타국은 현재 인도에 있는 겐지스강 아이오디아라는 조그마한 읍입니다. 
그 옆에 페자바드란 큰 도시가 있습니다.
허황옥의 아버지는 약초, 향신료 등을 수출하는 아유로베다 무역상을 했던 소왕국의 왕이었습니다.
아유타국에서 허황옥은 48년에 한국(가야)로 시집 왔습니다.
가락국기에 허황옥이 시집오면서 들고온 물품들을 보면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됐던 물품들이었습니다.
이런 물품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도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당시 가락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무역 교두보였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중국 현금이 발견됐습니다.
http://i.imgur.com/OozlYGr.png
중국 왕망은 신나라를 만들고 3차례 화폐개혁을 단행했습니다(AD 23년 왕망 죽음).
대천오십(AD 7~14년), 화천/화포(14~40년), 특히 화천은 20년만 통용됐습니다. 
아래는 그 화천이 발굴된 장소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사도행전의 사역을 감당할 당시
이미 중국은 김해와 무역했고, 김해는 당시 최고의 해상무역 관문이며 철을 수출했지요(KBS역사스페셜)
http://i.imgur.com/ARJu6nz.png
1세기 당시는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가 왕성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헬라의 알렉산더가 인도까지 통일했고, 페르시아 아하수에로왕 역시 그랬죠.
BC 1000년 전 이미 솔로몬 때도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어 해상무역을 활발히 했습니다.
그러니 바닷길도 엄연히 잘 발달돼 있음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경주에서 매년 열리는 [실크로드 축제] 팜플렛.
http://i.imgur.com/wsA53g0.jpg
[로만글라스 2000년전에 신라에 오다] -KBS역사스페셜-
http://i.imgur.com/2GcxuCE.jpg
천마총 맞은 편에 있는 두 개의 고분(황남대총)에서 나온 것으로, 일본작가 요시미즈의 '로마문화 왕국 신라'에는 신라는 온통 로마문화라고 주장합니다. 그것도 단순히 물건을 들여온 정도가 아니라 사신이 왕래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2) 허황옥의 후손들
허황옥이 10왕자 2공주를 낳습니다. 그 후손이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입니다.
허황옥의 아버지로 부터 내려오는 왕손이 지금도 인도에 살고 있습니다.
http://i.imgur.com/MbLkcWN.jpg
3김중 한 분인 김종필씨가 아유타의 후손을 찾아 김해에 데려와서 허황옥릉에 참배도 하고
기념식수도 해놓았으며 이런 인연으로 페자바드시와 김해시는 자매결연까지 맺었습니다.
*실지로 한국어 속에는 인도어(드리비다어)가 400여개나 있습니다. 
특히 농사 관련 유사 단어 (쌀-Sal, 벼-Bya, 가래-Kalai, 메뚜기-Metti, 풀-Pul 등)
http://i.imgur.com/gkm5LAh.jpg
3) 가락국기에서 밝히는 아유타국
삼국유사의 내용 중에 가야에 관해 가락국기에 보면 허황옥은 아유타에서 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요디아란 말 자체가 인도 의학, 아유로베다 의학을 하는 사람의 옛 왕국이다보니 아유타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인도에서 아유로베다란 의학이 의료관광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아유타국이 태국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허황옥이 가야에 태국 불교를 들고왔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유타국은 전세계에 두 곳이 있습니다. 
 (1) 태국의 아유타국은 AD15세기에 있었던 나라이지만, 
 (2) 인도의 아요디아는 BC 6세기부터 있었습니다. 
 -김병모박사(고려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 문학박사)

4) 서울대학교 서정선교수의 DNA검사
김해 대성동 고분박물관에는 허황옥과 김수로왕의 후손들의 유물이 있습니다. 
거기서 발견된 뼈의 DNA검사 결과 허황옥은 인도의 타미린과 같은 염색체로 밝혀졌습니다.
이로 인해 허황옥의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등 많은 설이 잠잠해졌습니다.

3. 김수로왕은 누구인가?
1)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교과서에는 이전까지는 알에서 나온 신화적 인물로 소개했지만 현재는 기마민족 정도로 본다고 실려있습니다.
http://i.imgur.com/S1GlymX.jpg
2) 흑해의 스키타이민족
김수로왕은 흑해 옆에 있는 스키타이 출신 왕자입니다. 
스키타이민족은 문자가 없으면서, 금은세공이 굉장히 발달한 민족입니다.
신라의 금관, 귀고리 등에 보이는 점이 찍히는 '무금세공법'은 스키타이민족만 가능한 것으로 나중에는 신라에 전래됩니다.
*참고로 농경문화는 옥을 숭상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모든 보물은 대개가 옥입니다. 실크로드를 타고 맨먼저
중국으로 들어온 보물도 옥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금을 숭상합니다. 가야가 멸망하고 신라로
흡수되었기 때문에 신라는 백제,고구려,일본,중국에서도 없는 금문화입니다.
http://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803/200803295443842.jpg
또 스키타이족은 황금장식과 함께 땅을 파서 시신이 담긴 목곽(木槨)을 안치하고 
그 위에 돌을 쌓아올린 소위 적석 목곽분이라는 무덤양식이 특징입니다(신라와 같음)
스키타이족은 흉노족 또는 훈족으로 불리는 북방 유목민족입니다. 
(수,당시대=돌궐(투르크=위구르=터키), 그리스시대=스키타이, 로마시대=훈족 등으로 불립니다.)
흉노(스카티아)가 인종학적으로는 아시아족에 속하는 황인종 퉁구스계열에 속합니다.

신라 문무왕 비문에도 김알지는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KBS역사스페셜).
AD682 문무왕 사후 세워진 비석이 경주 선덕여왕릉 앞 사천왕사 터에서 발견됐습니다. 정조20년(1796년)에 조각발견, 1961년에는 비석 상단이 발견됐습니다. 경주국립박물관에 있는 문무왕 비문에는 신라의 조상이 흉노족이라고 밝힙니다. 김일제는 한무제시절에 흉노족을 토벌하다가 잡은 흉노왕 휴도왕의 아들입니다. 그는 말을 사육하는 노예로 잡혔다가 나중엔 한무제의 경호실장까지 됩니다. 고향이 알타이(금)지방에서 왔다고 해서 김씨 성을 붙여줍니다(하략).
http://i.imgur.com/W518iHy.png
 중국문헌의 근거는 고대 중국의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의 왕 손권이 고구려를 ‘흉노의 왕’이라는 ‘흉노의 선우’라고 지칭한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http://i.imgur.com/0vUNEfM.jpg
유럽인들이 경주 방문하면 꼭 들르는 곳입니다. 신라 원성왕릉(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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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입구. 왼쪽에 문인은 신라사람이고 오른쪽 무인은 흉노족 입니다.
http://i.imgur.com/PU3lgZH.jpg
경주 괘릉에 있는 무인석상입니다. 
신라 원성왕릉
(785~798,김경신) 앞에 있는 것으로 AD 700년 경 스키타이민족과의 교역을 잘 보여줍니다.
얼굴 모양이 중앙 아시아인 - 아시아에서 서진한 스키타이족(흉노)이 유럽인들과 피를 섞여 동진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김수로왕의 청동 솥
김수로왕의 유물 중에는 김수로왕이 들고 온 청동 솥이 있습니다. 
그 청동솥은 쇠꼬챙이로 꿰어서 고기도 삼고 차도 끓이는 유목민들의 것입니다.
이것이 1990년대 초반에 김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발견으로 고고학계는 
김수로왕이 스키타이 사람이라고 다시 굳히게 됐습니다.
http://i.imgur.com/G7iGQCU.png
이런 영향은 신라에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신라 금관총에서도 기마인물형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http://i.imgur.com/FdmXbW7.jpg
http://i.imgur.com/nad6zbf.jpg
4) 김수로왕은 유태계 스키타이인
신약성경 골로새서 3:11에 나오는 '스구디아인'이 바로 스키타이인입니다.
스구디아인은 흑해 야만족인데 유대인들이 그리로 와서 유대인 스쿠디아인이 됩니다.
이들은 철기 문명을 가쳤습니다.
http://i.imgur.com/6u6z1UE.jpg
한반도에 철기문화를 보급했죠. 김해박물관에 철기 유물이 굉장히 많이 전시 돼 있습니다.
http://i.imgur.com/8xssXmE.jpg
김해시는 해마다 이렇게 철기문화의 가야를 알리는 행사를 엽니다.
청동기로 살던 한반도에 철기문명을 보급한 것은 김수로왕입니다.
1세기 당시 아시아의 반대편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미 철연장을 사용했고, 로마에 끌려가 콜로세움을 짓습니다. 
이렇게 스키타이족은 철기를 사용하는 강력한 기마민족입니다. 이들이 북쪽으로 거쳐 중국까지 옵니다. 
http://i.imgur.com/KVUvCpD.jpg
당시 실크로드는 육상과 해상이 이렇게 거미줄 처럼 연결돼 있었습니다.
정학봉교수에 의하면 거기서 성을 쌓고 정착 하다가
너무 힘드니까 남하하게 되었고 고구려, 신라, 백제 등에도 많이 흡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김수로왕은 삼국의 틈새 땅인 오늘날의 김해지역으로 와서 가야를 세운 것입니다
김수로왕은 스키타이에서 이주해 중국의 소김천씨라는 마을을 거쳐왔기 때문에 씨 성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김해의 구지봉에 왔을 때에 얼굴도 다르고 말도 못하니 
가마 안에서 통역을 통해 얘기를 나누었고, 왕으로 선포되었습니다(삼국유사 가락국기).

*김해 박물관에 가면 스키타이인이 왔다는 유적이 있습니다.
김해지역과 경주지역 고분에서 발굴된 동복, 각배(ship), 황금장식 등 북방유목민들의 유골과 유물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김수로왕은 혼혈로서 스키타이계 유대인이라 추정해봅니다.
사도들의 사역 방법은 어디를 가든지 흩어진(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사도 도마가 인도에 왔을 때 찾아간 아유타족 역시 유대인 혈족입니다.(당시 사도들의 전도전략상).
그런 연유로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왔을 때 김수로왕이 유대계 디아스포라였던 관계로 만난듯 합니다.

사실 BC 1000년 솔로몬 시대때부터 유대인들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무역했습니다(왕상9:26,10:22).
그곳이 에시온게벨이란 항구입니다. 물론 지중해를 통해 유럽지역과도 교역을 했지만 에시온게벨은
그 위치상 교역 대상국이 다릅니다. 이곳이 실질적인 해양실크로드
 출발점입니다
http://i.imgur.com/rFpgBKv.png
기원후 얼마까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상업을 한 민족은 유대인 밖에 없었습니다.
유럽인들끼리의 해양무역 말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무역말입니다. 
심지어 불교 신문에서도 불경을 나른 사람은 100% 유대인이라고 한답니다.
정학봉박사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6일을 그렇게 이동하다가 7일 안식일에는 
예배를 드려야하므로 
크고 작게 모여서 집성촌을 이루고 회당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4. 허황옥은 어떤 사람?
1) 사도 도마가 에데사를 거쳐서 탁실라(터키 이슬라바마드 옆)에서 왕궁을 짓고
인도 아유타국을 거쳐올 때에 허황옥의 나이는 10살이었습니다.

참고로 도마는 왕궁건축기술자였습니다. 인도의 군다포러스왕의 왕궁터와 동전이 발견되고,
또 군다포러스 왕이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도마의 인도선교와 도마행전에 기록된 왕국건축가라는 사실은 학자들도 동의합니다.

인도에 간 도마는 한국에도 왔습니다. 한국에 와서 김수로왕에게 세례를 주고, 부활절에 가야국을 기독교국으로 선포하고
교회를 세우고, 선교보고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인도에 들립니다(추정).
http://i.imgur.com/asz4wsx.jpg

2) 인도로 간 도마는 허황옥의 아버지에게 가야에 김수로왕이 모든 혼처를 마다하고 허황옥을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를 주게 됩니다. 허황옥의 나이가 16세 때 김수로왕에게 시집가기로 결심합니다(가락국기). 
가락 국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허황옥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동시에 꿈을 주었다고 합니다.
허황옥이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죽으면 죽으리란 심정으로 시집을 오게 됩니다.
   "부왕이 왕비로 더불어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젯밤 꿈에 함께 상제를 뵈었는데 
   상제의 말씀이 가락국왕 수로를 내려보내 등극케 하였으니 그는 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새로 나라를 세웠으나 아직 베필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 짝을 삼게
   하라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니라...
"
(삼국유사 가락국기 편 -일연스님-)
(*상제란 말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성경에도 하나님을 '상제'로 번역했습니다.
'엘 샤다이'를 중국 광동어로 번역할 때 '상제(샹다이)'로 번역함.)
사도 도마는 이렇게 중매선 후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여 선교보고 하려고 떠납니다.
http://i.imgur.com/4nYHpvJ.jpg

3) 허황옥이 시집 오면서 타고 왔던 배의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 싣고 왔던 돌이 있습니다.
김수로왕은 공주가 오는 날짜에 맞춰 크게 환영행사를 열었고, 
공주를 태워온 20여명의 뱃사공들에게 
큰 선물을 주어 보냅니다. 8월 1일 돌아가는 배에 벼 150석을 실어주었습니다.
선물들을 다 실으려고 배의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 싣고 왔던 돌들은 강변에 내려두고 가게됩니다.
그 돌을 탑으로 쌓아놓았습니다. 물론 이 돌들은 인도 산으로 판명됐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기록대로 구지봉을 비롯하여 파사석탑이 있는 일대가 모두 바다였습니다.
김해박물관에 전시된 조개무덤 패총은 지금의 김해가 옛날에는 전부 바다였다는 증거입니다.
김해평야가 만들어진 것은 3세기입니다. 가야의 철기 문화로 산에 나무를 베고 개간이 가능졌기 때문입니다.

http://i.imgur.com/6W2yHO5.jpg
*물론 불교계에선 '허황후가 불교를 들고 들어왔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고려 말(AD 1281년) 일연스님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이 당시에는 불교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제3권 [금관성 파사석탑] 
"그때 (김수로왕과 허왕후 시대) 해동에서는 아직 절을 창건하고 불법을 받드는 일이 없었으니 
대개 부처님 화상과 교리가 이르지 않았던 까닭으로 토박이 사람들이 신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기(本記)에는 절을 창건하는 기록이 없었다. 제8대 질지왕 2년 임진에 이르러 비로소 
그 땅에 절(왕후사)를 세웠고..."

일연에 의하면 불교가 한반도에 전파된 시기는 가락국의 건국(AD 42년)보다 훨씬 이후입니다.

삼국유사는 불교가 우리나라 들어온 때를 고구려 372년, 백제418, 가야 452, 신라 527년 이라고 밝혔습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것은 67년입니다. 그 영향으로 고구려 소수림왕 때(372년), 백제는 384년에 전파되었습니다.

가야는 452년 (8대 질지왕 2년) 왕후사란 절을 세웠습니다. 

신라는 418 년(신라 눌지왕 2년)에 고구려의 스님 묵호자(墨胡子)가 불교를 전파하려 했으나 신라왕가에서

반대하여 3년간 숨어 지내다 끝내 허락받고 흥륜사를 지으며 불교를 전파하였으나 신라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죽었습니다.

그후 신라는  527년 법흥왕 때 하급관리 이차돈이 순교하고 다음 해 528년 불교를 공인합니다.

이것은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올 때 상당한 저항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과연 신라가 어떤 신앙을 가졌기에 감히 법흥왕이 불교를 믿고 싶었는데도 신하들 왜 일제히 반대를 했을까요?

단순히 미신을 섬겼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한반도는 불교가 들어오기 전, 이미 기독교가 뿌리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승자의 불교가 패자인 기독교의 역사를 다 제거한 것입니다.


5. 경북 영주의 도마상
1) 경북 영주에는 도마의 상도 발견되었습니다.
http://i.imgur.com/78pxyWo.jpg
이것을 처음 발견한 분은 당시 서울관악고등학교 역사교사였습니다. 
순복음교회집사님이셨는데, 어느 날 기도 중에 경북 영주 이곳에 가보라는 음성을 주셨다고 합니다.
아들과 함께 막상 가서 보니, 이끼와 숲으로 뒤덮힌 바위덩어리였답니다. 
아무런 무속행위가 없었고, 넝쿨에 묻혀있었답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대나무와 붓을 가지고 하나하나 청소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다 상단부에서 히브리글자를 발견했습니다.
http://i.imgur.com/tPQpqft.jpg
[타우멤] = 바로 [도마]입니다.
히브리어 글자를 가장 먼저 학술화 한 분은 이장식 박사입니다.
이 분은 도마연구를 위해서 영국 멘체스터 대학에서 1년간, 미국 예일대에서 1년간 교환교수로 갔었고
한국에 돌아와서 [아시아 고대기독교회사]란 책을 내고
도마상의 [타우멤]이 도마란 사실을 학계에 공식 보고하였습니다.

도마상의 왼쪽 밑을 보면 [지전행]이라는 한자가 씌여져있습니다. 
http://i.imgur.com/uaX6tqA.jpg

한자에는 여러 서체가 있습니다. 
갑골문이 있고, 전서, 해서, 초서, 예서체가 있는데 
이 서체는 예서체입니다. 예서체는 중국 한나라시대(BC 206년~AD 220년)에 사용한 것이라
불교가 들어오기 전의 석상임을 입증합니다. 또한 가야 건국이 바로 중국 한나라시대입니다.

그리고 불상에는 발가락이 이렇게 묘사된 것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발가락이 선명히 묘사된 것은 바로 샌들이기에 그렇습니다.
http://i.imgur.com/DjRky4Y.png
http://i.imgur.com/forrFTB.jpg
기독교계의 이런 주장이 일자 불교계는 문화재청에 요청해[마애보살입상]이라는 팻말을 갖다 붙여 놨습니다.
불교계에서는 이 도마상을 옛부터 미륵불상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한 동네에 미륵불은 두 개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도마상은 방치된(?) 미륵상이었던 것입니다.
그 덕분에 넝쿨에 묻혀서 고스란히 잘 보존되었던 것입니다.

혹자는 도마가 왜 십계명에서 금한 형상을 만들었을까란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마도 도마가 쓴 '지전행'이란 글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지전행이란 '땅 끝까지 다닌 사람'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의 행1:8 명령을 따라 주의 복음을 정말 땅 끝까지 전한 도마 사도의 고백일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도마는 40년간 주로 강과 바다쪽으로만 다니며 선교했습니다.
유브라데스, 인더스 강, ...남인도에도 가보면 사도 도마가 가장 오래 산 곳은 수로가 많은 케롤라지역입니다.
그 곳에는 사도 도마가 세운 7개의 교회가 지금도 있습니다. 
AD 70년 예루살렘 멸망후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콜로세움 경기장을 지었습니다.
http://i.imgur.com/KHqW4FB.jpg
도마는 왕궁건축기술자였습니다. 에뎃사와 북인도에서 선교 하며 군다포러스 왕궁을 건축했습니다.
그러다가 실크로드의 땅 끝인 한국의 낙동강 지역을 선교하게 되었습니다(가락국기에 기록된 연대 AD 42년).
AD 48년에 김수로왕과 허황옥을 중매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AD 50에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참석합니다(서양역사 연대). 
AD 52년 인도의 서남부 케랄라주에서 선교하다가(인도역사에 기록된 연대), 
AD 72 인도의 첸나이에서 창에 찔려 순교합니다.
이렇게 도마의 일생은 한국과 서양과 인도에 기록된 연사적 연대가 한 사람의 이력서처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리고 도마상의 머리가 없습니다. 
정학봉교수의 책에 의하면 사람들이 머리를 인근 제변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찾아가 보니 그 얼굴이 한국사람이 아니라 유대인의 골격과 같다고 보고합니다.
(일제시대 때 많은 불상의 목이 훼손됐습니다. 경주 일대 불상들이 목이 없습니다)

2) 나뭇결 무늬 유리잔(황남대총남분, 신라)
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EN3eDd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MzQuanBn&filename=34.jpg
대릉원 황남대분에서 발견된 것인데 이스라엘제로 판명이 났습니다.
현재 김해박물관에는 수많은 성찬기를 볼 수 있고, 그 흔한 불상 하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철저한 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3) 쌍어문 = 이게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김수로왕능 입구 현판입니다. 당시 백제,신라,고구려에는 이런 국기 같은 마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독 가야에서만 사용한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왕능 입구의 현판의 원래 모습은 왼쪽이데, 지금은 오른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원 그림은 김해박물관 옛날 홍보자료(브로슈어)에도 실려 있습니다. 
나무 목판이다보니 보수를 하면서 저렇게 원형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교회가 이런 주장을 하니 
불교에서 마치 석탑처럼 왜곡시켜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왼쪽)는 떡과 물고기를 입으로 먹는 모습입니다.
http://i.imgur.com/eKACzhu.jpg
313년까지는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오병이어)가 기독교의 상징이었습니다.
313년 이후부터 십자가로 바뀌었습니다.
이 쌍어문의 이 그림은 바로 오병이어를 먹는 모습입니다.
빨간 점들은 유월절 양의 피를 의미하는 것이고, 입 모양에 떡과 물고기 두마리를 둔 것은 먹는다는 의미입니다.
물고기의 등지느러미 형태는 이스라엘의 타부가(가버나움)에 있는 오병이어 물고기의 모양과 일치합니다.
http://blogimg.hani.co.kr/editor/uploads/2008/10/14/66135_72966.jpg_M500.jpg
이 쌍어문에 대한 연구는 김병모박사가 40년을 연구하여 보고서를 냈습니다.
그는 어떤 쌍어신앙을 가진 무리들이 이스라엘에서부터 인도~ 한국~ 일본까지 갔다는 보고를 학계에 냈습니다.
김병모박사에 의하면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쌍어문의 흔적들은 저 루트를 지나는 나라들 마다 다양하게나타나 있답니다.
김수로왕비 허황옥(쌍어의 비밀 : 김병모, 조선일보사. 1994)참고

http://monthly.chosun.com/upload/0404/0404_334_9.jpg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쌍어신앙이 이 루트를 따라 1세기에 일본까지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박사는 그 기원을 BC 2700년 페르시아까지 거슬러 올라갔는데 너무 나가셨지요.
다시피 페르시아의 다곤신(오안네스)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김병모박사가 주장한 '쌍어신앙'은 사실 오병이어, 즉 기독교의 표식입니다.
결국 바울이 로마를 찍고 스페인(서바나) 서쪽 끝으로~
가장 의심많다고 타박했던 도마가 동쪽 끝까지 복음들고 와 주었습니다

2천년 전의 역사를 무슨 수로 100% 고증시켜주길 바라겠습니까?!!
몇몇 납득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유교,이슬람교는 발생한지 100년~600년 만에 한반도에 들어왔는데, 유독 기독교만 1800년이 지나서 들어왔다는 것도 대단한 믿음이 필요한 소리입니다. 이슬람교는 8세기 말 통일신라의 국제무역항 울산에 등장합니다.(고려 속요 쌍화점에 이슬람의 존재가 나타나고, 세종대왕은 무슬림에게 조선 복장을 입으라고 명했다고 세종실록 9년 4월 4일에 실려있습니다.-최상한박사-)
"행1:8 땅끝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못 이루나 하나님은 이루실수 있습니다. 
또 신약성경 정경화 되기 전이니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땐 내용적으로도 많이 아쉽지만
여튼 그 믿음의 대를 잇지 못하고 고려 불교에 완전히 먹혀버렸습니다.

기껏 동짓날 팥죽이나 쑤어 뿌리고, 북어 두 마리 묶어서 액땜하는 미신 정도로 전락해버렸네요~


:
Posted by ijoseph
2018. 4. 6. 13:52

부활의 10가지 결과 기독교 일반2018. 4. 6. 13:52

부활의 10가지 결과

Devotional by John Piper
(원문 보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린도전서 15:17)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10 가지 놀라운 것들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1) 결코 다시 죽지 아니하시는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로마서 6:9).

2) 회개.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사도행전 5:30, 31).

3) 거듭남.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 1:3).

4) 죄의 용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린도전서 15:17).

5) 성령.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도행전 2:32-33).

6) 택하신 자들에 대한 정죄 없음.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로마서 8:34).

7) 예수님의 개인적인 교제와 보호.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20).

8) 장차 올 심판의 증거.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사도행전 17:31).

9) 하나님의 장래의 노하심에서의 구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우리가 기다리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10; 로마서 5:10).

10) 우리 자신의 부활.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고린도후서 4:14; 로마서 6:4; 8:11; 고린도전서 6:1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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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joseph
2018. 4. 6. 12:49

고난주간이란? 기독교 일반2018. 4. 6. 12:49

고난주간이란?


고난주간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는 한 주간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군중들의 환호 속에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공식 선언하시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종려 주일로부터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신 부활 주일 직전까지를 절기로 삼아 주의 수난의 노고와 은혜를 경건히 기리는 한 주간의 절기가 바로 고난 주간이다.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이었던 이 고난 주간에는 예루살렘 입성, 성전 숙청, 감람산 강화, 성만찬 제정,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체포와 심문, 십자가 처형과 장사 등 그야말로 예수 공생애의 절정을 이루는 사건이요, 전 우주적 사건이기도 했던 대사건들이 숨막히게 전개 되었다. 이에 성도들은 주님의 사역의 모든 것이 응축적으로 담겨 있는 이 주간의 각 요일마다 그 요일에 있었던 사건들을 각각 기억하여 한 주간을 내내 엄숙한 절기로 보내게 된다.

'고난 주간'(Passion week) 또는 '성 고난 주간'(Holy passion week) 등으로 불리는 고난 주간의 원래 명칭은 큰 주간, 즉 하나의 큰 일주일이라는 뜻의 '대주간'(Great week)이었다. 이 명칭은 동로마 교회의 고난 주간 행사를 기록한 에게리아(Egeria)의 순례집 속에 언급되어 있으며, 서로마 교회에서도 이 주일을 대주간이라고 불렀다. 로마 교회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이 주간의 공식 명칭으로, 대주간을 의미하는 'Hebdomada Magna)' 또는 'Hebdomada Major' 등을 사용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한 의로운 인간의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세워진 구속(救贖)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 구속주가 당하신 전 우주적 고난이었다.

태초에 인간은 선악과를 두고 맺은 언약을 어기고 범죄했다. 그리하여 원래의 규정대로 죽어 영벌을 받아야 했다. 더욱이 하나님은 절대 거룩한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시므로 그분이 세운 법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랑(Love)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단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공의의 원칙대로 처벌하시면서도 구원받을 새로운 기회를 주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믿고 회개함으로써 구원을 얻게 되는 법을 궁극적으로 성취하기 위해 대속 희생으로서의 고난을 겪으셨던 것이다. 주님은 이런 구속의 법을 가장 처절한 사형수단이었던 십자가(the Cross)위에서 마침내 하나님에게까지 버림받은 영육간의 처절한 고난을 통하여 성취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본래 제2위 성자 하나님으로서 영광과 주권을 버리고 죄인을 구하기 위하여 수난을 당하신 주님의 사역에 담긴 공의와 사랑을 마음 속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창 3:15; 사 53:1-12)

고난주간의 유래

고난 주간은 사순절 절기 내에 포함된 절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겪으신 고난을 생각하며 지내는 주간이다.

이러한 고난 주간이 언제부터 지켜지게 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롬 6:3-5, 고전 11:23-26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절기가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고난 주간이 전교인의 공식적인 절기로 공개적으로 지켜진 것은 A.D.313년 콘스타티누스 대제의 신앙 자유령이 포고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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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jose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