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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29. 22:55

[2018.04.22] 약속! 목사님 설교 말씀2018. 4. 29. 22:55

만화 주님 약속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단어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아니? 

새끼손가락을 거는 것부터 시작해서 

반지와, 열쇠, 계약서, 언약서, 서약서 등등... 

알게 모르게 우리는   약속이라는 것을 하고 살아.


그런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실없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사기꾼이 될 가능성이 많아. 

그래서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 

너희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기다리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다고? 

우리하고? 레알?

그럼 하나님은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일까 아님 깜빡깜빡 하실까?


하나님은 성경에 의하면 정말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셔. 

그래서 신실한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일까? 

궁금하지? 

그건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거였어. 

정말 제자들은 기다렸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지....


참 친구들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중요한 다섯 가지만 기억하자!

첫째 구원을 주시겠다고 하셨어

둘째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셨어

셋째 천국에 갈 거라고 하셨어

넷째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셨어

다섯째 재림하시겠다고 하셨어


어때 기대되지 않아? 

그 약속 믿고 우리 다같이 기다리며 믿음 안에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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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joseph

(원문링크)

[제이슨송 칼럼] 불편한 예수 (11)

새언약초중고등학교 제이슨 송 교장
▲새언약초중고등학교 제이슨 송 교장

10.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한번 살다 가는 인생, 내 맘대로 살아 보자)

성경의 하나님,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을 거부하는 무신론자들의 철학은 바로 허무주의(nihilism)다. 그러니까, "인생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며, 영생이란 것은 망각에 불과하다면, 그냥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살다 죽자"란 주장이다.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의 "인빅터스"란 시를 들어 보았는가?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나는 그 어떤 신이든, 신께 감사하노라
내게 정복 당하지 않는 영혼을 주셨음을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서
난 움츠리거나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운명의 몽둥이에 두들겨 맞아
내 머리는 피 흘리지만 굴하지 않노라

분노의 눈물이 이 땅을 너머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비록 문이 좁을지라도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첫 부분은 마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견고한 의지를 갖고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는 듯 하다. 그러나, 끝 부분엔 헨리의 생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비록 문이 좁을지라도"란 예수님이 마태복음 7장 13절에 말씀한 "좁은 문" 그러니까 힘들고 어려운 천국길을 말하고, 또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는 그 좁은 길을 택하지 않았을 때 도착할 지옥을 말하는데, 헨리는 천국이든 지옥이든 상관없이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겠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자 내 영혼의 선장이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시나 노래가 얼마나 많은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 한국 70,80세대의 힛트곡 "내 인생은 나의 것" 다 그런 맥락의 노래다.

그러니 이런 사고를 갖고 있는 자가 못할 짓(?)이 있겠는가? 물론, 큰 범죄를 저지르는 자는 그리 많지 않겠지만, '욜로'의 사상 하에 삶을 살아간다면, 매사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될 수 있겠고, 특히 미성숙한 청소년은 이런 태도와 자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우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청소년은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나 듣고 싶은 음악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고, 절제와 정직을 요구하는 부모나 교사의 권위에 대들고 반항하며, 거침없이 남을 비하하고 비수같은 말로 상처를 주며, 공부나 책임완수보다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택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참 딱할 정도로 어리석으며, 미성숙함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며 어른이 되어, 또 부모가 되고, 조직의 리더나 중책을 맡은 사람이 되면서 깨닫는 것이 무엇인가? 말씀 묵상과 연단을 통해 신앙의 성숙함을 이뤄가며 배우고 느끼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인생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를 읽어보고 또 그 책의 내용대로 40일 새벽기도나 강해설교를 들어본 사람은 릭 워렌 목사가 한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목적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다"란 것이다. 이것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대로 표현한다면, Man's primary purpose is to glorify God and enjoy Him forever, 즉, 인생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기는 것이란 말이다.

잠언 3장 5-8절에서도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를 신뢰한다는 뜻은 인간이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범사에 그를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100% 받아들이는 것이다.

잠언 3장 5-8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지식을 의지하지 말아라. 너는 모든 일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그러면 그가 너에게 바른 길을 보이실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악을 피하라. 이것이 너에게 좋은 약이 되어 너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감으로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YOLO 철학과 정반대 되는 가르침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청소년의 중심에 YOLO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이들에겐 정도와 정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하나님이 불편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이런 하나님을 가르치는 교회가 불편한 곳일 수밖에 없다.

이런 청소년의 마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가짐이다. 이 세대 교회와 목회자, 주일학교 교사, 그리고 기독교 학교 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믿는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돌리게하라: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4, 5)

이것은 영적 전쟁이요 전신갑주를 필요로 함을 잊지 말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2)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롭고 깨끗한 마음을 청소년이 소유하도록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한 뜻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합당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장)

이런 거룩한 목적을 이루려는 좋은 교회학교 교사와 기독교 학교 교사, 그리고 청소년 사역자들이 많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익과 쾌락보다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위해 삶을 바치는 그런 차세대 리더를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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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joseph
2018. 4. 29. 22:47

[겨자씨] 부활 주님과의 동행 좋은 글2018. 4. 29. 22:47

크리스천은 주님의 부활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막상 그 부활 주님과 동행하는지를 묻는다면 왠지 자신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 문득 동화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세상 중요한 것들(믿음 소망 사랑 등)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부활 주님과의 동행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심을 믿고 느끼며 무엇에든지 주님께 묻고 기도하는 것이 부활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13년의 긴 투병생활을 통해 이를 절실하게 깨달은 일본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오랜 요양생활 가운데 약해지면 곧잘 ‘임마누엘, 아멘’을 외쳤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주님께서 곁에서 지켜주셔서 마음과 육신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누구에게 오해를 받을 때에도 이 짧은 기도를 드리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강하게 하시므로 순간 기쁨이 솟아납니다.”

만일 당신도 부활 주님과 동행하고 싶다면 한번 고백해 보십시오. “임마누엘, 아멘!” 그러면 어느새 부활 주님께서 당신 곁에 계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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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joseph
2018. 4. 29. 22:44

[2018.04.22] 말씀퀴즈 말씀퀴즈2018. 4. 29. 22:44

1.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누가복음과 (                ) 두 권의 책을 편지 하였다. [행1:1]

2. 첫 번째 펀지인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령  하시고 (          )하신 날 까지의 기록이다. [행1:2]

3.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          )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 하셨다. [행1:3]

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          )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셨다. [행1:4]

5. 4절에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약속은 바로 물이 아닌 (          )으로 주시는 세례이다. [행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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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1] 말씀퀴즈  (1) 2018.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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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joseph


아브라함 :

하나님은 약속하셨지 나를 통해 큰 민족 이루실거라고 음음~

이  삭 : 

보이지 않지만 나는 볼 수 없지만 난 분명히 믿네 하나님 약속을

야  곱 : 


하나님은 약속하셨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음음~

너를 지키며 널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거라고

후  렴 :


 

하나님 약속 그의 나라 이루시네 하나님 약속 그가 지키시네

하나님은 우리 왕 우리는 주의 백성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네 하나님 나라 이루시네

요  셉 :


꿈꾸게 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뜻대로 인도하시는 주님 음음~

주가 인도하셨던 애굽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네

모  세 :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고통 받는 이스라엘 그 목소리 들으시고 음음~

크신 능력을 베푸사 놀라운 구원을 보이셨네

후  렴 :



하나님 약속 그의 나라 이루시네 하나님 약속 그가 지키시네

하나님은 우리 왕 우리는 주의 백성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네 하나님 나라 이루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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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joseph
2018. 4. 21. 19:56

데오빌로 성경인물이야기2018. 4. 21. 19:56

뜻 :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보낸 수신인으로(눅 1:1, 행 1:1) 로마의 기사 계급이며 누가와는 절친한 사이다.


(원문보기)


누가와 데오빌로 행 1:1-5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를 다룬 ‘성령행전’이요, 뜨겁고 쉴 줄 모르는 기도의 사역을 생생하게 전해 주는 ‘기도행전’이며, 또한 성령 받은 평신도들의 헌신을 다룬 ‘평신도행전’이기도 합니다. 사실 사도행전 전반부의 주 인물인 베드로와 후반부의 주 인물인 바울의 괄목할만한 사역들도 이런 평신도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원칙은 오늘날 교회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의 종들을 도와 헌신하는 평신도들이 없다면 한 시대에 큰 흔적을 남긴 위대한 목사, 선교사, 교사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평신도행전’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물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사람은 ‘데오빌로’입니다. 이 사람은 누가복음 1장과 사도행전 1장 전반부에 두 곳에서만 간략하게 기록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 기록된 것에만 근거하여 ‘데오빌로’가 과연 어떤 평신도였는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귀족적인 배경 

첫째로, 데오빌로는 귀족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절에서 누가는 데오빌로를 “각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다른 곳에서 바울은 벨릭스와 베스도에게 “각하”라고 불러 경의를 표 했습니다 (23:26; 24:3; 26:25). 그러므로 우리는 벨릭스와 베스도가 당시 총독이나 왕이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데오빌로도 그에 상당하는 신분이었던 것을 쉽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이런 신분으로 미루어보아 데오빌로는 또한 많이 배운 사람이요, 부자요, 큰 권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누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받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언제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할 당시 서문에 데오빌로 각하에게 그 책을 증정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주후 60년경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누가가 의사였기 때문에 데오빌로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회를 얻어 데오빌로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결국 예수를 믿었습니다.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는데, 부와 귀를 동시에 누리고 있는 데오빌로가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우리는 데오빌로라는 사람의 사람 됨됨이를 쉽게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많이 배웠고 존귀한 신분과 큰 부를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 바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많이 배우고 존귀하며 부자인 사람들이 예수를 믿은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이나 고넬료 같은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다 외형적으로는 교만할만한 요소들이 많았지만 심령들이 가난해져서 외형적으로 많이 배우지 못하고 천하며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훨씬 쉽게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교회들은 지식인들, 고위관리들, 부자들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 때문에 쉽게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복음을 들어야 하고 또 구원 받아야 할 대상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친구 

둘째로, 데오빌로는 진정한 하나님의 친구였습니다. 원래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친구’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 역사가였던 ‘조셉프스’ (Josephus)는 ‘고대사’ (Antiquities)라는 책에서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다 썼다고 증거 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의 원래 이름이 ‘데오빌로’였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아니면 후에 그가 예수를 믿고 바뀐 이름인지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는 이름 그대로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누가는 먼저 책 (누가복음)에서 그를 “각하”라고 불렀는데, 사도행전을 기록할 즈음에 와서는 그냥 “데오빌로여” 하고 불렀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한 시기를 주후 63년부터 70년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0년 사이에 그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먼저 책에서는 데오빌로에게 예수를 소개하느라고 그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해 “각하”라고 했지만, 이미 예수를 믿고 그의 제자가 된 후에는 그렇게 부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한 형제처럼 아주 다정하고 친근하게 “데오빌로여” 하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귀족과 평민 사이의 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형제 사이요, 그런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아마도 그런 형제 관계를 넘어서 복음을 전해준 사람과 복음을 전수받은 사람의 관계로 발전했던 것 같습니다. 

현대 교회도 이 점을 본받아야 합니다. 교회 밖에서라면 몰라도 적어도 교회 안에서만은 어떤 계층 (class)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의 차이,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차이, 권력을 가진 사람과 눌린 삶을 사는 사람의 차이 등 어떤 차이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복음 안에서는 평등해야 합니다. 단지 모두가 다 형제요, 자매로 대하고 대해져야 합니다. 그런 곳이 진정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셋째로, 데오빌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누가처럼 바울 사도를 끝까지 돌보며 도운 사람도 없습니다. 그는 바울의 가장 가깝고 신뢰할 수 있는 동역자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그의 사역을 거의 다 바울 사도와 함께 동역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에 투옥되었을 때 많은 제자들이 바울의 곁을 떠났지만, 누가 만큼은 끝까지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는 바울 사도와 동행하다가 데오빌로를 만났을 것이라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항상 어느 도시를 가든지 제일 먼저 유대인들이 있는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누가는 어느 회당에선가 데오빌로를 만났을 것입니다. 한 예를 들어 봅시다. 고넬료라는 사람은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행 10:2)고 말합니다. 후에 베드로를 찾아간 그의 하인들이 그를 보고 “그는 의로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온 유대 백성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22)라고 소개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 사람 곧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들이 예배드리는 회당을 찾아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고 그대로 실천했던 사람이어서 이방인을 멸시하는 유대인들조차도 그를 존경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데오빌로도 유대인 회당에 나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다가 누가를 만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누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 받았습니다. 우리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데오빌로가 예수를 믿고 난 후의 삶에 대해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1. 그는 누가의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주경학자들이 데오빌로가 누가의 사역에 중요한 후원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가진 위치와 물질 등으로 복음전도 사역과 선교 사업을 후원했습니다. 따라서 누가가 그런 중요한 후원자에게 두 책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써서 증정한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의 복음전도 사역과 선교 사업에 이런 후원자들이 필요합니다. 물질, 시간, 기도로 헌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확장해나가는 평신도들이 필요합니다. 


2.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는 한 사람의 이름이 그것도 고위직에 있는 사람의 이름이 예수 믿는 사람들 사이에 공개적으로 알려진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니고데모 같은 사람은 그런 이유 때문에 한 밤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왔습니다 (요 3장).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옥에 갇히기도 하고 핍박을 받기도 하며 심지어는 사자 굴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데오빌로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공개적으로 이름이 거론되어도 그것을 감수할 정도로 믿음이 원숙한 사람이요, 복음을 위해서 지위는 물론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였습니다. 하루는 한 부자 청년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구원에 대해 묻는 그에게 예수님은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팔고 난 후에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여 떠났다”고 말합니다. 이 청년은 마음 한 구석으로는 예수를 따르고 싶었지만 자기가 소유한 재물 때문에 그것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만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이에 비하면 데오빌로는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더 나아가서 복음 전도 사역과 선교 사업을 위해 데오빌로처럼 후원자가 되십시다. 데오빌로처럼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를 진정으로 따르는 제자,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제자가 되십시다.[최완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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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21. 19:26

성령의 임재 성경만화2018. 4. 2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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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21. 16:41

[2018.04.15] 꼭 묻고 싶으신 말 목사님 설교 말씀2018. 4. 21. 16:41



부활하신 예수님과 베드로의 마지막 만남일 수 있는 간절한 시간이었지...


그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어오셨어

마지막일 수 있는 그 순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꼭 그 질문 한 개밖엔 없으셨던 것일까?

아님 그 질문이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일까?


나는 후자라고 믿고 있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질문에  

"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답을 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예수님께로 갈 수 있는 첫 번째 관문이기 때문이지..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는 ...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라고 하셨거든


둘째 

그 사랑의 고백에는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야

그 고백을 통해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의 마음이 치유되고 

제 일의 수제자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야


셋째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곧 말씀을 지킨다는 약속이기 때문이야

요한복음에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의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하셨거든


오늘도 예수님이 나를 만나신다면 

아마 이렇게 물어 오실거야

"너는 나를 사랑하니?"


그렇게 물어 오시는 주님께 베드로처럼 고백해보자

"네! 예수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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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14. 12:55

가장 아름다운 사랑 - 이현숙 - 좋은 글2018. 4. 14. 12:55

e6f99f91199a66b176cdb62c6a89602c.jpg : ***하나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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